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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중반의 제주祭主의 부인은 이제 더 이상 건강상의 이유로
제사 지내는 음식 장만에 한계를 느끼고 제사 중단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일 년이면 한 번씩 찾아오는 부모님 제사상 음식 장만이 발단이 된 것이다.
400년 전통의 어느 가문의 제사상의 음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소박한 밥과 국, 그리고 김치와 나물 서너 가지였다.
아마도 처음 시작의 제사상은 그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통이 재산의 사유화로 부의 형평이 형성되면서
제사상의 음식 종류와 많고 적음에 따라
빈부가 차별화되는 경쟁이 벌어진 현상이었을 것이다.
정성된 마음과 조상의 혼을 기리는 원래 의미는 사라지고
제사를 지내는 형편을 중시하는 주객이 바뀐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작금의 제사상의 음식은 장만하는 입장에서는
고된 노동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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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시작하면 제사의 대상인 '혼령'은 방문을 할까?
제사 음식의 많고 적음에 따라 조상이 주는 복도 많고 적을까?
제사를 거르고 차린 음식이 약소하다고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또는 목숨보다 귀했던 자식들에게 부모는 해코지를 할까?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하는 주체,
즉 후손이나 자식들이 스스로의 자기만족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하는 것은 아닐까?
제사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분명히 상존할 것이다.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자손들과 형제들이 모여 부모님을 기리고
조상의 얼을 새기면서 결속과 우애를 다지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핵가족, 다문화, 빈부격차 등으로
형제간, 가족 간의 우애는 이념과 논리적인 측면을 벗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 사회에 이어져온 제사의 유래와
의미 등을 정리하면서 제사를 되새겨 보는 기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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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의 유래와 의미
1. 개요
제사의 기원은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자연숭배와 연관이 깊다.
고대의 사람들이 신의 가호로 재앙을 피하기 위해
천지신명께 정성을 올린 것이 제사의 시작이다.
제사(祭祀)란 신이나 신령, 고인의 넋에게 제물을 봉헌하는 의식을 말한다.
따라서 고대 종교의 신전 제의, 가톨릭의 미사 등도 일컫는 폭넓은 개념이지만,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주로 조상 제사의 의미로 쓰인다.
전 세계 어디에나 제사에 해당하는 조상 추모 의식은 존재하지만,
대한민국에서의 제사라 함은 유교식 제례 행위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교식으로는 기본적으로 4대 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제주'(제사를 주관하는 남성. 제사 시작하면 맨 먼저 절을 올리는 남성이다.)의
4대조(부 & 모, 조부 & 조모, 증조부 & 증조모, 고조부 & 고조모)까지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기본이었고,
넘어가면 매안(埋安)이라고 하여 신위를 사당에서 옮겨 땅에 묻고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이후 5대조 이상의 조상들은 개개인의 기일이 아닌
음력 4월이나 10월에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가서
동시에 기리는 묘사(墓祀)를 지내거나,
큰 공을 세운 조상들의 신위는 시대가 지나도 옮겨 그만두지 않고
계속 제사를 지내는 불천위(不遷位) 같은 예외가 추가되었다.
보통 서양권에서 이 문화를 소개할 때 제사를 보통
Korean Ancestral Rites(한국의 조상에 대한 의례)라고 하거나
아예 'Jesa'로 음역한다.
2. 유래
신이나 신령, 조상 등에게 봉헌하는 의식은 유교뿐 아니라
수많은 종교에서 관찰되며 중요시된다.
고대 중국 상나라(은나라)의 왕 조갑이 주변 토착신을 배제하고
조갑의 직계 조상만 섬기는 조상신 풍습을 만들었다.
상나라는 주나라에 의해 멸망당했지만 주나라는 위에서
조갑이 퍼뜨린 풍습을 따라 상나라의 제사 방식을 이어받았다.
가문의 제사를 끊기게 하면 그 사람에게 제사가 끊어진
조상귀신들이 재앙을 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후 떠돌이 생활을 하며 왕들을 가르치던 공자가
주나라 제사 문화를 재정비했다.
일반명사로서 제사의 뜻은 이렇지만,
흔히 한국에서 '제사'라고 하면
'조상 제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수단으로서 행해진 제사는 중,
근세에 이르러 유교와 결합하여 조상숭배의 제도로 고착되었다.
또한 종교적 의미를 가지면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정교가 분리된 이후에도 황제는 하늘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며,
자신의 조상을 신격화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권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가정에서는 효의 의미를 가져 가문의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종교적 면은 사후세계의 인정을 통한
유교 특유의 간접적 영생법의 의미를 가졌다.
고려, 조선 전기까지는 불교의 영향으로 아들·딸 상관없이
재산을 공평하게 분배 받고 제사의 주체에서도 남녀 차별이 없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출가외인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윤회사상에 의해 남녀 구별 없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셨으며,
기혼 남성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시집간 누나의 집을 방문하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의 제사는 조상의 넋을 기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후손들이 마음을 다해 예를 올리는 전통문화이다.
고려 시대 중국의 주자학이 전래되면서 조상 제사 의식도 함께 유입되었는데,
당시는 불교가 국교였기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려 말부터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에 민간에 널리 장려되었다.
처음에 제사는 조정 중신과 일부 양반들 사이에만 행해지다가
조선 중기 이후 평민에게도 일반화됐다.
제사가 많은 폐단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행해지는 것은,
죽은 조상신이 후손을 지켜주고 복을 준다는
기복 사상(祈福思想)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천주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에는
조상 제사를 우상숭배로 여겨 금지하였으나,
교황 비오 12세가 1939년 「중국 의식(儀式)에 관한 훈령」을 통해
유교의 조상 제사는 종교의식이 아니요,
시민의식이라며 조상 제사를 허락하였다.
개신교는 제사를 우상숭배로 여기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대신, 성경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되어 있어
살아계신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3. 종류
제사의 종류는 크게 기제(忌祭), 차례(茶禮), 묘제(墓祭)의 세 가지로 나눈다.
기제는 고인이 돌아가신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
차례는 설날과 추석에 지내는 제사이다.
묘제는 한식과 추석 때에 산소에 찾아가 음식을 차려 놓고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4. 방식
제례는 모두
강신(降神)-초헌(初獻)-독축(讀祝)-아헌(亞獻)
-종헌(終獻)-유식(侑食)-합문(閤門)-계문(啓門)
-수조(受胙)-사신(辭神)의 순서로 되어 있다.
원래 제사는 자시(子時, 밤 11시∼새벽 1시)에 지내고, 차례는 낮에 지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편의상 제사 시간을 앞당겨
저녁 8∼10시 사이에 지내는 경우가 많고,
차례는 주로 명절날 아침에 지낸다.
제사상차림법은 조율시이(棗栗枾梨), 좌포우혜(左脯右醯),
어동육서(魚東肉西), 홍동백서(紅東白西), 두동미서(頭東尾西) 등 규범이 있지만,
집안 형편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주자가례(朱子家禮)'와 『사례편람(四禮便覽)』 등
제례와 관련된 예서(禮書)에 보면 소박하고 간소한 제사상이었으나,
조상 제사를 통해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경향으로
제사 음식과 제사 절차가 점점 화려하고 복잡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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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변화
2000년대 들면서 제사 풍속도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변화의 주체는 이제 며느리에서 시어머니로 올라서게 된
50, 60대 여성들로 자신은 참아왔지만
제사 스트레스를 며느리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변화의 핵심은 ‘간소화’였다.
제사를 대신해 가족들끼리 모여 간단히 추모식으로 대신하거나
여러 조상들의 ‘기제사’를 한 번으로 통합하고,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이다.
장남뿐 아니라 자녀들이 번갈아 가며 제사를 지내는 ‘순번제사’도 늘고 있다.
1989년 이후 '친족법'의 개정으로
모든 자녀에게 균등하게 재산을 상속하는 만큼
제사도 자식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 때문이다.
6. 의미
제사는 가족 공동체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의식이다.
가족 간의 결속을 강화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잊지 못하는 인간의 기본적 정감을 예제화 시킨 것이다.
따라서 우리 시대에 가족 공동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제사는 청산되어야 하겠지만,
가족 공동체가 여전히 의미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제사의 의미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
방법과 절차를 간소화한다면 제사는 골치 아픈 집안 행사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이어 주는 ‘소중한 가교 역할’이 될 수도 있다.
제사의 의미를 살리고 이어 가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음식을 줄이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준비해야 한다.
또한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좋아하셨던 음식을
함께 먹어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천편일률적인 제사 음식이 아니라,
망자가 좋아했고 또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7. 마치며.
제사를 시작하는 첫 순서인 '강신(降神'은
제사의 대상인 혼을 부르는 순서이다.
과연 '혼령'은 방문을 할까?
제사 음식의 많고 적음에 따라,
또는 제사의 빈도에 따라
조상과 부모들의 혼은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또는 목숨보다 귀했던 자식들에게 부모는 해코지를 할까?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하는 주체인 후손이나 자식들이
스스로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하는 것은 아닐까?
제사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분명히 있다.
자손들과 형제들이 모여 부모님을 기리고 조상의 얼을 새기면서
결속과 우애를 다지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순기능이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핵가족, 다문화, 빈부격차 등으로
형제간, 가족 간의 우애는 이념과 논리적인 측면과 부합하지는 않는다.
형제간의 갈등도 있고, 자식과 부모 간의 불화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 사회에 이어져온 제사는 명맥을 이어가는 데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유교'라는 우리 사회의 개념이 점차 희박해져 가거나
소멸해가는 현실에서 그 잔재인 제사는 점차 설자리를 잃고 있다.
작금의 현실에서 제사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일 년에 한 번씩 가족들이 모여 제사 대신
그 비용으로 '외식'을 한다는 대체 모임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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