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꿈 명언 사랑 연민 좋은글 모음/좋은 글 모음

창조와 진화, 구전의 성경과 인간이 만든신, 카르텔의 숙명!

 

※ 이 글은 리처드 도킨슨의

[신, 만들어진 위험]을 읽고

나름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종교이든 어떤 조직적인 것이든

예를 들어 사법 행정 외무고시 출신이든

약사 의사 교사 경찰 고시 출신들이든

잘못된 것이거나 의롭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산다.

고가에 귀한 제품인 줄 알고 구입했는데

'짝퉁'인 줄 알면서도 발설하거나 돌이키면

자신에게 불리해질 것을 염려하여

알면서도 묵인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일명 무리 속의 '카르텔의 숙명'이다.

종교에 대한 카르텔의 숙명과 진정성

기도하는 대상이라고 모두 신은 아니다.

간절한 기도와 간절한 부탁도 있다.

부탁의 대상인

조상이나 부모나 성모마리아는 신은 아니다.

글자가 없던 시절 입에서 입으로 구전으로 전해온

귓속말 놀이처럼 확인되지 않은 신화나 전설은

사실도 역사도 진실도 아닌 허구이다.

단지 카르텔의 속성처럼

진실이기를 희구하는 문학적 상상력이다.

한 뿌리에서 시작된 종교인

유대교 이슬람교 가톨릭 개신교는

각자의 이해타산에 따라 서로 다른 이념처럼 갈라졌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면

카르텔의 속성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칼 세이건은

"비범한 주장에는 비범한 증거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에 관한 비범한 증거는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당시 성경의 정경 외경마저도

학자마다 교파마다 다르다.

파티마의 기적이라는,

태양이 움직여 내려왔다 올라갔다든가 하는

지구 파괴의 대사건임에도,

아무렇지 않은 실제에 대한 사건을 인정한

로마교황청은 의심스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느님이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어

태양을 멈춰 밤이 오는 걸 미뤘다는

성경의 내용을 우리는 믿어야 할까?

모세의 이집트 탈출 사건은

이집트의 역사에도 그 기록이 없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은 모세 탈출에

파라오의 편에 서서

유대인의 집 문설주에 양의 피를 보고서야

알게 하는 등 어찌 도와주지 않았을까?

아메리카 대륙의 피그미족이나

수많은 부족의 신화나

유대인의 아담과 이브 신화나

단군왕검의 신화나

어느 것이 진실이고 더 가치 있다고 할 수 없다.

신화는 신화일 뿐 사실이 아니고 역사는 될 수 없다.

성경이 선한 책이라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은

종교 간의 전쟁이다.

그들이 믿는 성경은 악한 책인가?

구약성경은 죽이고 살육하고 전멸시키고

가죽을 벗긴 번제물을 수십수백 마리씩 바치게 하는

성경 속 내용이 버젓이 있는데

선한 책일 수 있을까?

그 옛날 그 당시에는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반려견이 유모차의 주인이 된

지금의 시대에는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지금의 반려견에 대한 인식이

번제물을 바치던시대,

구약성경이 신의 뜻이던

그 시대에는 어땠을까?

노아의 방주 사건은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유 무생물을 하느님은 전멸시켰다.

구약의 신인 하느님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자식 이사악을,

욥의 자식과 하인들을 죽이면서까지 희생을 요구한다.

구약의 신은

자신이 선택한 백성에게

다른 부족을 끊임없이 도륙하고,

살려두지 말고,

전멸시켜 모조리 죽이라고

다그치며 번제물을 바치라고 한다.

아담과 이브가 모든 민족의 신화처럼,

우리가 단군의 환웅과 웅녀의 자손이 아니듯이

실체가 아닌 아담의 원죄와 자손이 아니므로

우리를 구원한다는 예수의 죽음은 의미가 없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왜 자기를 버리느냐며 절규함에도

하느님은 살려주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큰 뜻,

구원사업의 과정이라고 하면

모든 것은 한 방에 옳은 것으로 귀결이 된다.

또 가톨릭의 신자로 살기를 원한다면

카르텔의 속성이란 원칙에 가두면 이의가 없다.

성경이 우리에게 삶의 바른 방법을 알려주고

훌륭한 롤 모델이라는 생각은 재고해 봐야 한다.

성경에 문외하고 아예 없는 신자들도 있다.

예수의 행적처럼 본받으라는 논리는 이해가 된다.

성경이 쓰인 시대와 작금의 시대는 다르다.

종과 노예, 동물에 대한 인식, 여자에 대한 인식 등

수백수천 만년을 지켜온 전지전능한 신이

불과 2천 년 후의 현재를 예상 못 했을까?

죄를 지어놓고 사함을 받는다고

죄가 소멸될까?

돈을 빌려 놓고 갚지 못한 잘못을

빌려준 자가 사해 줬다고 없어지나?

변제 못한 채무는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창조를 넘어 진화

시계 하나가 만들어지는데도

부품이 있기까지

원료 등 수많은 공정이 거쳐야 한다.

창조론은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한다.

그럼 하느님은 어디서 왔나?

수억 년을 풍파에 견딘 바위의 형상이나

촉매, 효소 등 화학반응에 의한 결정체는

진화이지 창조가 아니다.

자연선택을 통한

생명의 자기조립이라는 이론이다.

진화란

성공적인 유전자가

유전자풀에 점점 많아지는 과정이다.

현생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 출발한

호모사피엔스로 150만 년에서 40만 년 전에

진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인간이 종교를 원하는 것도

행복을 갈망하는 진화가 아닐까?

대자연 앞에 미약한 인간이

두려움을 가진 시점부터

인간은 신을 창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리처드 도킨슨의 결론이다.

진화론의 찰스 다윈도

또한 같은 결론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