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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사자성어글

무용지용 無用之用과 프레임과 패러다임의 인식의 차이!

무용지용

 


잎만 무성한 나무를 두고 갑론 을박 합니다.
목재로 쓸 수 없으니 베어 버리자는 무용론과,
잎이 무성한 여름에는 그늘을 주어 좋다는 유용론이 맞선 형국입니다.
세상 일을 소아적인 작은 범위로 보게 되면 아집이 자리 잡게 됩니다.
아집이 굳으면 상대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니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배려와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보다
한 층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자성어가 
바로 '무용지용 無用之用'이 아닌가 싶습니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양분되는 것은
아집이 다른 한 쪽의 사고를 막아 버린 탓입니다.
이를 프레임이라고도 하고 패러다임이라고도 하여
날고자 하면서도 한 쪽 날개를 접어 버린 격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의 인식 체계는 
어쩌면 대단히 허술하여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허술한 인식 체계를 보완하는 
프레임과 패러다임의 차이와 무용지용에 관한 글입니다.

 

무용지용

 


사람의 인식 체계


​사람의 인식 체계를 논하는 데는 프레임과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이 둘은 상호교차하면서 양면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갑니다.

프레임(Frame)은 
물건의 틀이나 기초 뼈대, 
더 나아가서 사람이 생각하는 기본 틀이나
결정하는 방식 등을 의미합니다. 
프레임과 비슷한 개념으로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패러다임(paradigm)이란, 
어느 한 시점에서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가 
한 방향으로 모아져 대세를 이루고
행동으로 옮겨가는 지각의 총체입니다.
대부분 패러다임은 대규모의 인식 체계를 말하고, 
프레임은 소규모의 인식 체계를 말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사고 흐름은
각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프레임과 패러다임에 의한 인식 체계의 차이는
동일한 사안을 두고도 마찰을 빚기도 하여 
완전하고 안전한 결정으로 가는 조력자이기도 합니다.

 

무용지용



무용지용無用之用


無 없을 무
用 쓸 용 
之 어조사 지
用 쓸 용

무용지용은 ​쓸모 없는 것의 쓸모 있는 것,
즉,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 같은 것이라도
세상 만물은 모두 각자의 쓰임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얼핏 들으면 궤변에 다름아닌 억지 같지만
'다만 제자리에 있지 못한 것'에 의한 시각의 차이입니다.
예를 들어 성을 부수는 데는 들보가 제격이지만 
조그만 구멍을 막는 데는 조약돌이 더 요긴합니다. 
하루 천길을 달리는 천리마도 
고양이를 잡는 데는 쥐만 못합니다. 
쓰임이 모두 다른 까닭일 뿐이지
개개의 용도는 대단히 유용한 것입니다.
즉, '쓸모 없는 것의 쓸모 있는 것'으로 
쓰임 용도가 서로 다른 이유입니다.
무용지용無用之用에 대한 아래 고사를 보면
완벽한 해답이 보입니다.


혜자와 장자의 무용지용에 관한 담론입니다.


“당신의 말은 아무 데도 소용이 닿지 않는 것뿐이오.” 
혜자가 장자의 말이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자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쓸모없는 것을 아는 자라야 무엇이 참으로 쓸모 있는지 말할 수 있소. 
광야가 아무리 넓어도 그곳을 걷는 자에게는 두 발 둘 곳만 있으면 되오. 
그렇다고 발 둘 곳만 남기고 주위를 천 길 낭떠러지로 파 버린다면 
사람이 그 길을 갈 수 있겠소?” 혜자가 답했다. “그건 안 되지요.” 
장자가 속뜻을 꺼냈다. 
“그렇소. 
주변의 쓸모 없는 땅이 있기에 발 둘 땅이 쓸모 있게 되는 것이오.” 

잎만 무성한 나무를 나무꾼이 쓸모가 없다고 해서
자르지 않는 것을 보고 장자가 제자에게 말했다.
“그 아래 그늘을 노닐면 좋지 않겠느냐
저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자기 수명을 다한다.”
– 장자(莊子) 인간세편(人間世篇) –

 

무용지용

 


장자의 아래 말은 참으로 경구에 가깝다.

"발 둘 곳만 남기고 주위를 
천길 낭떠러지로 파 버린다면 
사람이 그 길을 갈 수 있겠소?”



자기가 잘 났다고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사람이 있다.
딛고 있는 두 발 외를 천 길 낭떠러지로 파듯
주위에 사람이 없다면 잘 나본들 무슨 소용이며
천 만금을 가져 본들 제 혼자이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쓸모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무지에서 나오는
교만함의 일방적인 선 긋기가 아닐까?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고 한다.

목재를 찾는 사람에겐 볼품없이 쓸모없어 보이는 굽은 나무가

조경을 그리는 사람에겐 그 어던 나무보다 값진 나무일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잣대로 만물의 쓰임을 멋대로 재단하지 마라.
만물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 쓰임이 훨씬 오묘하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신의 생각이 아집이냐 아니냐에 따라,
그 가치와 쓸모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미워하는 자가 있는가?
나보다 못하다고 깔보는 자가 있는가?
쓸모없는 자라고 업신여기는 자가 있는가?
교만하고 무례하다 여기는 자가 있는가?
무능한 책임자라고 폄하하는 자가 있는가?


...

그들도 반드시 쓸모가 있을 것이다.
무용無用이 아닌 지용之用일 것이다.
그러니 함부로 외양을 보고 판단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