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이집트 왕국BC 3100~BC 30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로마 옥타비아누스
(후일 아우구스투스:로마제국 초대황제)에게 패배 후 이집트 왕국 멸망.
2. 메소포타미아(두강사이에있는 나라: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메소포타미아 - 아카드제국-우르왕조(수메르왕국)-아시리아제국(수도 니네베)-
바빌론제국(수도 바빌론)-히타이트제국-신바빌로니아-페르시아제국(구 이란:BC550~AD651)
3. BC2000 or 1700년경 우르지방(수메르인) 아브라함-가나안으로 떠남
4. 바벨탑의 지역은 바빌론이다.
5. 노아의 홍수의 무대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다.
6. 아브라함-이사악-야곱의 12아들 중 요셉: 형들에 의해 이집트로 팔려 갔으나(BC1500년경) 파라오의 고문겸 장관이 됨.
7. 모세의 탈출 BC 1250년경.(즉 1700-1250=450, 2000-1260=740년만에 모세는 다시 아브라함이 갔던 가나안으로 회귀함)
8. 유대의 지혜의 왕 솔로몬은 BC1000년경 인물로 모세의 탈출기 후 200년쯤 후의 인물이다.(솔로몬 엄청난 예루살렘성전지음)
9. BC722년 북이스라엘 아시리아에게 멸망, 136년 후 BC586년 남유다는 바빌론 네부카드네자르왕에게 멸망.
(네부카드네자르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바빌론유수 50년 포로 생활- 이때부터 구약 성경 기록 시작됨)
10.BC 1000년경 지중해 연안 가나안 북쪽의 상인들인 페니키아 인들에 의해 알파벳 시작
11. 바빌로니아(고, BC1895~BC1595/신, BC627~BC539) 함무라비법전(BC1750)
12. 이오니아제도- 그리스의 섬들로 이루어진 제도
-페르시아 제국
13. 페르시아제국((BC1990년-AD 1894년)이란영토) BC538년 키루스대왕 바빌론 정복 후 유대인 귀향조치.
14. 마라톤 - 그리스의 마라톤 지역에서 BC490년에 페르시아와 그리스군의 전투후
병사가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달려가 전령을 전하고 죽은데서 유래.
15.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 4년마다 올림피아라 불리는 경기 치름 - 각 종목 승자에게는 상은 '올리브나뭇가지',
첫번째 올림피아 경기는 BC 776년에 열림. BC 776년 무렵 한반도에서는 고조선, 중국에서는 주나라가 쇠퇴하고 춘추 시대.
16. 스파르타 인들의 삶은 편하고 안락한 삶보다 의미있는 삶을 추구.
17. 아테네의 솔론에 의한 BC 594년 솔론헌법-투표와 다수의 결정,민주주의(=데모크라티아) 기초
-부처 불교
18. 인도는 BC 2500년경 게르만어를 쓰는 정복자들이 인도의 토착민을 정복하고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상위 지배계급으로 존속.
19. 부족의 왕자였던 고타마 싯다르타(석가모니)는 29세 이전에
늙은 사람(老노), 병든사람(병 病), 죽은 사람(사 死), 은둔자(수행자, 해탈의 길)를 보고,
그는 29세 때 세속의 부귀와 가족(아내 야소다라, 아들 라훌라)을 뒤로하고
고통의 원인을 찾기 위해 출가하여, 이후 6년간의 고행과 명상을 거쳐 35세에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
20. 보리수 나무(菩提樹나무)(깨달음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알리기 위한 길을 나섰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세운 교단이 바로 불교이다.(기원전 528년경, 35세 때)
21. 부처의 가르침은 '탐'하지 않으면 슬퍼할 일이 없다. 욕망을 줄일 수록 고통도 줄어 든다.
22. 사람이 마음을 닦으면 필요한 것이상은 원하지 않는다. 이것이 부처가 말하는 '내면의 평온'이란 깨달음이다.
23. 욕망도 없고 괴로움도 없는 무의 경지를 불교에서는 '열반'이라 한다.
24. 오늘날 전 세계에는 크리스트교 신자만큼이나 불교 신자들이 많지만
진정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따라 살면서 내면의 평온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자
25. 중국은 1912년까지 머리를 땋았고 2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집트의 파라오가 태양의 아들로 여겨졌듯
중국의 황제는 '하늘의 아들'이란 의미로 '천자 天子'라 불렀다.
26. BC221년 막강한 제후들을 통합 통일한 사람은 진시황제였다.
27. 중국은 부족들이 언어는 달라도 공통된 '문자'는 소통이 되었다. 왜냐하면 중국의 문자 한자는 말이라기 보다는 그림에 가깝기 때문이다.
28. 공자는 '인 仁'을, 맹자는 성선설의 측은지심을 인간의 본성으로 삼았다.(순자는 성악설),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인위적인 행위나 꾸밈 없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스스로 그러하게 살아가는 것), 도道가 핵심사상이다.
29.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원전 431년부터 기원전 404년까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는 폴리스들이 맞붙은 전쟁이다.스파르타 승리 - 마케도니아에 정복됨
- 마케도니아 왕국/알렉산더대왕
30. 알렉산드로스(알렉산드로스) 대왕(BC 356~BC 323년 6월, 바빌론) -마케도니아(기원전 336년 ~ 기원전 323년) 국왕으로 스승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사 지휘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후세의 수많은 군주들이 그의 생애를 롤모델로 삼았으며,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세계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년~기원전 322년)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으로,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사상은 서양 철학과 과학의 근간을 이루며, 그의 방대한 저술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31.알렉산드리아-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 정복후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자신의 이름을 붙여 처음 세운 신도시.
32. 알렉산더 대왕은 BC 323년 32살의 나이로 소아시아 정복후 돌아오는 길에 바빌론에서 장티푸스로 죽었다.
33. 트로이 전쟁 - 그리스와 트로이 전쟁(트로이 목마)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2세기 경 그리스 신화 속 전설적인 전쟁은 대략 1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트로이의 왕자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트로이 데려간 것이 원인.
긴 전쟁이 끝이 보이지 않자, 그리스 오디세우스는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그 안에 정예 병사들을 숨기고, 그리스군이 철수하는 것처럼 위장.
트로이인들은 이 목마를 그리스군이 남긴 승리의 전리품으로 여기고 성 안으로 들여놓았다.
한밤중, 목마 속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나와 성문을 열었고, 숨어 있던 그리스군 본대가 성으로 밀려들어왔다.
결국 트로이성은 완전히 함락되었고,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며 길고 길었던 전쟁이 막을 내렸다.
34. 로마의 시작은 BC 753년 부터임
1) 로마의 집정관제, 귀족, 평민으로 구성되었으며 아테네의 활동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전형적인 보수적인 사람들로 '법'이 중요했다.
2) 알렉산더 대왕의 식민지 이후 로마는 점진적으로 이탈리아를 통일했다.
※피로스(BC297년-BC 272년)의 승리: BC 275년 로마와 그리스 원정에 나선 마케도니아 왕 피로스의 전쟁
고대의 유명한 일화이자 시사용어. 이겼으나 손해뿐인 승리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말이 더 쓰인다.
35. 한니발(카르타고 장군)과 파비우스막시무스(로마 장군)의 전쟁:
카르타고의 식민지 이베리아 반도에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넘어온 카르타고의 한니발에게
BC216년 칸나이 전투에서 4만 전사자로 로마군의 패배. 그러나 BC202년 로마는 카르타고를 점령함.
36. 로마는 BC146년 코린토스 전투의 승리로 그리스 본토 대부분을 장악하며 사실상 그리스는 정복되었다.
중국
37. 진시황제:BC 221년 중국최초 통일
출생: BC 259년 -사망: BC 210년,진 시황제는 전국 칠웅 진나라의 제31대 왕이자 제1대 황제로, 중국을 최초로 통일, 세계 최초의 황제이다.
※분서갱유(焚書坑儒)
진시황제의 명으로 '책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파묻음'이라는 뜻으로, 기원전 213년의 분서 사건과 기원전 212년에 발생한 갱유 사건을 하나로 합쳐서 일컫는 것이다.
실용서를 제외한 사상서를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한 탄압책으로 중국에서는 분갱(焚坑)으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38. 로마는 속국들에 대해서 세금만 납부하면, 종교, 언어 등 토착민들에게 관대했다. 로마의 포장도로, 목욕탕과 수도 설비 등은 훌륭했다.
"나는 로마 시민이다"라는 말은 마법의 주문처럼 로마시민은 어느 속국에 가든 대우를 받았다.
39. 로마의 노예들은 물건, 짐승처럼 대우를 받았고 주인의 마음대로 죽일수도 있고 처분이 되었다.
40.13258017(313년 밀라노칙령-콘스탄티누스 대제 종교자유화/1325년 니케아공의회,콘스탄티누스 대제 니케아 신경,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테살로니카 칙령-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승인, 1517년 종교 분리)
베네딕도회(529년 /남여 수사 수녀)
*세가지 서약: 결혼하지 말것,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것, 수도원장에게 항상, 무조건 복종할 것.
41. 성 베네딕토(480년 출생547년 사망)-베네딕토 수도회를 창설자
로마에서의 세속적인 삶에 실망한 베네딕토 성인은 은수생활을 시작한 후, 529년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가 이탈리아 몬테카시노에 설립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도회입니다.
'분도회'라고도 불리며, 서양 수도생활의 모범을 제시하며 유럽의 기독교 문명을 보존하고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09년 독일 베네딕토회 수도자들이 한국에 처음 파견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수도원으로는 왜관수도원이 있습니다.
모토: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 기도와 노동의 조화를 통해 하느님을 찾고 봉사하는 삶을 추구합니다.
이슬람
42. 이슬람(Islam) 또는 회교는 알라(야훼)를 유일신으로 믿고 무함마드를 신의 사도로 여기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이다.
이슬람을 믿는 종교인을 무슬림(Muslim)이라고 한다. '알라'라는 호칭은 아브라함계 종교의 유일신을 뜻하는 단어이다.
한국 이슬람교에서는 유일신을 '하느님'이라고 한다.
43.무함마드( 570~632년)- 아랍제국(이슬람국가)의 형성
이슬람교의 창시자로, 무슬림들에게는 유일신 알라의 최종 예언자로 여겨지는 인물로 그의 가르침은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 기록되어 있다.
40세경, 무함마드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알라의 계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계시의 내용은 훗날 《쿠란》으로 집대성됩니다.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와 같은 예언자들의 뒤를 잇는 '예언자들의 봉인(마지막 예언자)'이라고 믿습니다.
무함마드는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40세 사업가 여자와 25세에 결혼 후 사업이 승승장구 메카에서 널리 알아주는 거상 가운데 한명이 되었다.
40세 610년경에 메카 근처 히라 동굴에서 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을 통해 알라의 계시를 받음.
44. 이슬람 원년(서기 622년)-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박해를 피해추종자들과 함께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사건(=헤지라(Hijra))
45. 무함마드 유일신은 “오직 한 분 알라만이 참된 신이다”라는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46. 무함마드는 신의 뜻에 복종해야 하는데 복종이란 말이 아랍어로 '이슬람'이다.
47. 이슬람교의 천국과 지옥의 개념은 사후 심판 후 천국(자나)과 지옥(자한남) 으로 나뉨. 행위와 믿음이 기준.
48. 무함마드의 원칙 : 무함마드는 신의 예언자이고 이에 대한 불신자는 굴복시켜야 한다, 하루에 메카를 향해 5번 기도해야 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임.
49. 이슬람 쿠란의 구절 중
1)불신자는 더이상 저항하지 못할때 까지 격퇴하라
2)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찾기만 하면 죽여라
3)우상 숭배자는 붙잡고 색출하고 포위하라. 그러나 만약 개종하면 무사히 보내줘라.
50. 아라베스크-중동의 이슬람 문화권에서 발달한 장식 무늬 양식. 이슬람식 문양(구불구불하게 선이 많은 궁전이나 사원의 화려한 문양
51.카롤루스 대제(Carolus Magnus, 약 742~814)
프랑크 왕국의 왕이자 초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입니다. 서유럽의 정치적, 종교적 통일을 이루고 중세 유럽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프랑스어로는 샤를마뉴(Charlemagne), 독일어로는 카를(Karl) 대제로 불립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등극: 800년 12월 25일, 로마에서 교황 레오 3세에게 서로마 황제의 제관을 받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52. 크리스트교가 자리를 잡은 이 후 서양에서는 노예제도가 없어졌다.
53.962년 교황은 오토대제에게 신성로마제국의 왕관을 씌어 주었고 독일의 왕은 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세계 크리스트교의 보호자가 되었다.
54. 이 시기에 로마의 황제는 교황을 아래에 두었고 영토를 영주들뿐 아니라 주교, 대주교들에게도 봉토로 주었다.
따라서 성직자들은 종교관리는 물론 농노들은 다스리며 영토를 관리하며 전쟁이 일어나면 농노들을 데리고 전쟁에 참여했다.
55. 이상황은 사제들의 수장은 교황이지만 봉토의 주인은 로마 황제 였기때문에 지역의 성직주 교 임명권 투쟁(1075~1122년))으로 번졌다.
1122년 교황 칼릭스투스 2세와 로마 황제 하인리히 5세가 타협한 '보름스 협약'으로 마무리 됨.
사실상 교회와 국가의 분리의 시초이자, 교황권 강화의 계기가 되었고 유럽의 교황권이 황제권보다 우위에 섰음을 상징한다.
56. 교황권의 역사
1) 9~10세기 이전, 즉 초기 중세(약 5세기~10세기 초) 동안에는 교황이 황제보다 정치적으로는 약했지만, 종교적 권위는 점차 커지고 있던 과도기였습니다.
2)4~5세기: 로마 제국 말기 — 교황권의 태동기 - 황제가 교회 위에 있었다
*배경: 로마 제국의 국교가 기독교로 공인됨.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 → 기독교 공인
.*니케아 공의회(325년)-예수 삼위일체로 신성인정
*380년: 테오도시우스 1세 →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
3)6~8세기: 서로마 제국 붕괴 이후 — 교황의 자립 시작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 황제가 사라짐.
⇒ 교황이 로마 지역의 사실상 유일한 지도자로 남음.
4)8~9세기: 프랑크 왕국과의 제휴 — 교황권 상승
-->“형식상 교황 > 황제, 현실은 황제 > 교황.”
5)9~10세기 교황권 약세기 - 봉건 영주나 왕의 간섭 속에 교황권 약화 (“암흑의 세기”)
6)11~13세기 초 교황권 절정기
*카노사의 굴욕 (1077년)
→ 독일 왕 하인리히 4세가 눈 덮인 카노사 성 앞에서 자신을 파문 시킨 교황에게 3일 동안 용서를 빎.
- 교황이 유럽의 정치·종교적 최고권자로 군림
-“하느님의 권위는 황제보다 위에 있다”
-교황이 황제 선출에도 영향력 행사.
-십자군 원정을 주도 (특히 제4차 십자군).
※ 보름스협약
1) 1122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5세와 교황 갈리스토 2세 사이에 맺어진 협약
2)성직자 임명권을 둘러싼 오랜 투쟁인 '성직 서임권 투쟁'을 일단락 지은 사건
3)교황과 황제 사이의 성직 서임권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여 중세 유럽의 정치·종교적 안정에 기여.
4)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의 분리(제절분리)가 시작되는 중요한 계기가 됨.
▶ 보름스협약이후에도 교황권과 황제권의 우위는 분쟁이 있었으나
교황 인노첸시오 3세(1198~1216)는 교황이 황제 선출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유럽 군주들 위에 서 있는 듯한 ‘세계적 심판자’ 로 자리잡았음.
교황이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파문하고 폐위시키기도 하여 이 시기 교황권이 절정에 달합니다
7) 교황권 쇠퇴의 시작 (14세기 이후)
-왕권이 강해지고, 교황권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시작.
-아비뇽 유수 (1309~1377):
프랑스 왕 필리프 4세가 클레멘스 5세 교황을 프랑스로 끌고갔고
이기간에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이전했던 70년의 시기를 일컫는 용어이다.
-이후 교황권 분열 (1378~1417)로 권위 추락.
8) 1377년 이후 교황은 더 이상 유럽 정치의 중심이 되지 못함.
근세로 넘어가며 왕권이 강화되고, 교황은 종교적 역할에 집중.
57. 중세 기사도는 12세기경 프랑스를 중심으로 봉건제도와 십자군 원정을 배경으로 시작되었다.
중세 유럽의 신분제도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같이 농노의 자식은 농노가 되어야 했고 기사의 자식은 기사가 되어야 했다.
기사의 아들들은 일곱살이 되면 '시동'이라 하여 시중을 들었고 열네살이 되면 '종자'라하여 가사의 조수로, 21살이 되면 기사가 되었다.
58.중세 기사도 정신은 중세 유럽의 기마무사 계급이 지켰던 행동 규범이자 정신적 가치관으로, 용맹함, 명예, 충성심, 약자 보호 등을 핵심으로 한다.
기사들은 맹세를 지키고, 약자(과부, 고아 등)를 돕고, 교회와 성직자를 보호하는 등 엄격한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했다.
59.교황 인노첸시오(인노켄티우스) 3세에게 복종하지 않은 영국 존왕을 굴복시킨 사례인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는
1215년 6월 15일 영국의 존 왕이 귀족들의 요구에 의해 서명한 문서로,
'대헌장(大憲章, the Great Charter)'이라고도 불립니다. 교황의 막강한 권력인 시대였다.
이는 왕의 절대 권력을 제한하고 법적 절차를 준수할 것을 명시한 역사상 최초의 문서 중 하나로,
현대 입헌주의와 민주주의의 시초로 평가받으며 오늘날까지도 영국에서 준수되고 있다.
60.칭기즈칸(Chinggis Khan, 1162경~1227)은 몽골 제국의 건국자이자 초대 황제(칸)
1206년 몽골 초원 통일을 이룬 뒤 '칭기즈칸'으로 추대, 세계 정복에 나서 중국의 금나라와
서하, 중앙아시아의 호라즘 왕조 등을 정벌하여 역사상 가장 넓은 육상 제국을 건설.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대량으로 학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61.길드(Guild)는 중세 유럽 476-1453 (약 천년)에서 상인과 장인 등등의 조합을 가리키는 말이다.
길드는 사업권 면허를 통해 해당 지역의 생산권이나 상권을 독점하였다.
중세 도시는 지역 상공업의 거점으로서 직물공, 석공, 목수, 조각가, 유리 공예가와 같은 많은 장인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동업자끼리 조합을 만들고 자신들의 기술 비밀을 지키고 상품 거래에 따른 사항들을 조정하였다.
62. 이당시 교회나 대성당을 새로 지을 때 도시민들은 이웃 도시보다 더 크고 화려하며 아름다워야 한다는 공명심이 불탔고,
이는 도시 전체의 작품이었고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공동 예배와 같은 것이었다.
63. 유대인-고대 유럽의 민족들 중 유일하게 남은 민족이며 선민사상으로 2000년 동안 자신들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유대인은 '유대 지역의 사람(Judea·Judaea人)'이라는 뜻을 지니는 민족명으로 한자로는 유태인(猶太人)이라고도 한다.
유대인은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존속했던 국가인 유다 왕국의 후손으로 간주되며,
근연민족으로는 이스라엘 왕국의 후손인 사마리아인이 있다.
유대교 신념은 개인적인 복수심을 경계하며, 율법과 신의 공의 안에서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64.백년전쟁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왕위 계승권을 놓고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전쟁을 의미
이 전쟁은 잔다르크의 등장으로 프랑스가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고, 칼레를 제외한 프랑스 대륙 영토에서 영국군을 몰아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65.유럽에서 기독교의 대성당이 주로 세워졌던 시기(약 1000년~1500년경)
▶교황권의 전성기 11~13세기의 대성당은 이 시기 대성당은 단순한 예배 장소가 아니라
신앙과 예술의 결합체, 도시 공동체의 중심, “하늘을 향한 인간의 영혼의 상징”이었습니다.
유럽에서 기독교의 대성당(Cathedral) 이 집중적으로 세워진 시기는 주로 11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즉 중세 중기에서 후기(약 1000년~1500년경) 입니다.
이 시기는 기독교 신앙, 교황권, 도시경제, 건축기술이 함께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시기별 건축양식은
시기 /양식 /시기 /특징/
10~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약 1000~1150년/두꺼운 벽, 작은 창문, 반원형 아치. 초기 수도원 중심의 건축.
12~14세기/고딕 양식/약 1150~1400년/높은 첨탑, 스테인드글라스, 뾰족한 아치. 대성당 전성기.
15~16세기 /르네상스 양식/약 1400~1600년/인간 중심, 조화로운 비례, 돔 구조 발달. 고전 건축 부활.
▶대표적인 고딕 대성당들: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 1163~1345)
*샤르트르 대성당 (프랑스, 1194~1220)
*랭스 대성당 (프랑스 왕의 대관식 장소)
*쾰른 대성당 (독일, 1248년 착공, 19세기 완공)
*캔터베리 대성당 (영국, 1170년 이후 확장)
▶의미
이 시기 대성당은 단순한 미사 전례 장소가 아니라
신앙과 예술의 결합체, 도시 공동체의 중심,
“하늘을 향한 인간의 영혼의 상징”이었습니다.
66.레오나르도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적인 화가, 박식가로, 예술뿐만 아니라 과학, 수학, 공학, 해부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과 업적을 남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암굴의 성모, 세례 요한, 수태고지 등 윤곽선을 부드럽게 처리하는 독창적인 회화 기법인
스푸마토(sfumato)를 개발하고 사용하여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과학자 및 해부학자, 발명가 및 공학자, 수학자 및 철학자로서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67.독일의 인쇄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발명한 금속 활판 인쇄술에 의해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었으며,
이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452년부터 본격 성경 출판에 착수했으며 3년간의 노력 끝에
1455년 구텐베르크 성서라 불리게 되는, 최초의 불가타 성경 인쇄본이 완성되었다.
※고려시대에는 13세기 초에 금속 활자 인쇄술이 발명되어 1377년의 『직지심체요절』이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인쇄술을 계승하여 목판 인쇄와 금속 활자 인쇄를 병행했으며, 1434년에 갑인자를 제작하는 등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69. 화약 : 1300년 경 부터 무기로 사용 됨.(고려: 최무선이 1377년(우왕 3년) 화약과 화약 무기를 만들기 위한 '화통도감'을 설치)
70. 십자군 전쟁(十字軍戰爭, Expeditio Sacra[)
1095년부터 1291년, 200년에 걸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럽 기독교 국가들의 이슬람 원정을 가리킨다.
71.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년-1506년)1492년 “신대륙(아메리카)”을 발견한 인물
이탈리아반도 제노바 공화국 출신으로 스페인에서 활동한 탐험가, 항해사
1492년 8.3.에스파냐(스페인) 출발 탐험시작, 1492.10.11일 아메리카 서인도 제도 도착
1492~1504년, 총 4차 항해로 유럽인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한 항해가, 또는 식민지 침탈의 상징, 원주민 학살과 노예화의 인권 유린과 폭력자로 평가
72.면벌부(免罰符)와 면죄부(免罪符)- 1095-1567(약460년 동안 진행)
"죄에 따르는 벌을 면해주는 증서", "죄를 면해주는 증서"라는 뜻이나 면벌부가 합당한 용어.
중세시대 로마가톨릭에서 금전이나 재물을 바친 사람에게 죄가 사면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교황의 이름으로 발행한 증명서를 가리킨다. 증명서는 ‘면죄부’, ‘면벌부’, ‘속죄부’라고 불렸다.
면죄부라는 제도가 생긴 건 11세기 십자군 전쟁 때였다.
십자군 참전을 독려하기 위해, 십자군에 참여하여 전사하거나 살아서 돌아오는 이들에게 죄의 벌을 면제해 주겠다고 공표했다.
면죄부 판매는 교황청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면죄부의 가격은 평민의 입장에서 당시 이 돈이면 6개월치 월세를 낼 수 있었고,
송아지 3마리를 살 수 있었다. 평민들이 이 돈을 모으려면 몇 달 동안 한 푼도 안 써야 가능했다.
부작용으로 금전적타락, 성직자의 부패, 종교적 세속화, 신앙의 왜곡에 반발한 수도사 마르팀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의 1517년 종교개혁의 촉발을 가져왔다.
1095년 (첫 사례) 교황 우르바노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 참전 용사들에게 전대사(모든 벌을 면제)를 약속한 것이 금전적 대가와 결부되기 시작하여
가톨릭교회는 1567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면벌부 판매와 관련된 금전적 거래를 공식적으로 금지했습니다.
73.종교개혁(1517년에 시작하여 1648년에 종료) - 루터 칼뱅 츠빙글리
16세기 종교개혁을 이끈 3대 개혁가입니다. 루터는 독일에서, 츠빙글리와 칼뱅은 스위스에서 각각 종교개혁을 시작
*루터 (Martin Luther)-온건적 개혁, 독일의 종교개혁가로, 1517년 95개조 반박문 발표로 종교개혁의 시작, 성경의 권위와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다
*츠빙글리 (Huldrych Zwingli)-급진적 개혁, 스위스 취리히의 종교개혁가,성경에 기반한 성찬례를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
*칼뱅 (John Calvin)-급진적 개혁,
루터보다 후대에 활동한 2세대 종교개혁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하며 칼뱅주의 신학을 정립
74. 예수회( 1540년)
종교 개혁 후 가톨릭과 루터파의 싸움의 와중에서 로욜라에 의해 '예수회'가 설립되었다.
예수회는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의 인가로 설립된 로마 가톨릭교회의 남성 수도회로,
정식 명칭은 '예수회(Society of Jesus, Compañía de Jesús)'이다.
창립자는 스페인의 전직 군인이었던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tius of Loyola) 성인과 그의 초기 동료 6명이다.
75. 30년 종교 전쟁(1618년 ~ 1648년 :30년간)-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싸움
-인류의 전쟁사에서 가장 잔혹하고 사망자가 많은 전쟁 중 하나였다.
-보헤미아 전쟁(1618~1625), 덴마크 전쟁(1625~1629), 스웨덴 전쟁(1630~1635), 프랑스 전쟁(1635~1648)
-총 사망자 수: 약 800만 명으로 추산
종교개혁 이 후 1600년 경부터 개신교의 영국이 북아메리카와 인도등에서 패권이 시작되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대립은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인해 촉발되었으며,
주요 원인은 가톨릭 교회의 부패와 교리적 차이였다. 이로 인해 유럽 전역에서 심각한 갈등과 종교 전쟁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교황을 중심으로 하나였던 서방 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구교)와 프로테스탄트(신교)로 영구적으로 분열되었다.
가톨릭 교회도 트리엔트 공의회 등을 통해 자체적인 개혁(반종교개혁)을 추진하며 부패 청산과 교리 재정립에 나섰고,
예수회 같은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하여 개신교의 확산에 대응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종교 갈등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30년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체결된 평화 조약
-이 조약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권위를 약화시키고 각 국가가 자국의 영토 내에서 배타적인 주권을 가지는
근대 국가 체제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이후 국제 사회의 중요한 원칙인 주권 국가 원칙의 시초가 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 내 가톨릭과 개신교 세력 간의 30년 전쟁(1618-1648)을 끝내는 조약,
-1648년 10월 24일, 독일 베스트팔렌 지방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3세(가톨릭)와 프랑스 왕, 스웨덴 왕 사이에 맺음.
76. 오스만 제국(1299~1922)(현재지명으로는 터키(튀르키에)와 유럽일대임)
1299년튀르크족 지도자 오스만 1세(Osman I) 가 소규모 부족국가를 세운 것이 시작.
“오스만 제국은 한때 유럽·아시아·아프리카를 잇는 초대륙 제국이었고,
그 영토는 오늘날 30여 개 국가로 나뉘어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지역의 언어·문화·종교·행정의 뿌리에는 여전히 오스만의 흔적이 깊이 남아 있다.”
77. 무시무시한 이반-이반 4세 (1530~1584)
러시아 역사상 첫 번째 ‘차르(황제)’로 즉위한 인물,반대파를 대거 숙청하고 공포정치를 실시.
러시아의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영토를 크게 확장한 군주,공포정치를 시행한 폭군으로 평가.
78. 1700년대 계몽주의(啓蒙主義)-관용,이성, 인도주의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지적, 철학적 사조이다.
이 사상은 인간의 이성(理性)을 바탕으로 무지와 미신을 타파하고 사회를 개혁하여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이루고자 했다.
프랑스의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영국의 존 로크, 데이비드 흄, 독일의 임마누엘 칸트 등이 대표적인 계몽주의 사상가이다.
계몽주의는 미국 독립선언과 프랑스 혁명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으며,
근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79.'프로이센(Preußen):1701년 왕국 성립 ~ 1947년 공식 해체
'프로이센(Preußen)'은 유럽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국가이자 지역으로, 특히 독일 통일의 주역이자 강력한 군사 강국의 대명사였습니다.
독일의 역사
고대~중세 초기 (게르만족 시대)-신성로마제국 시대 (962~1806)-프로이센 중심의 통일 운동 (19세기)-제1차 세계대전과 바이마르 공화국 (1914~1933)
-나치 독일 (1933~1945)-분단 독일 (1945~1990)-통일 독일 (1990~현재)
“프로이센 → 독일 통일 → 독일 제국” 순으로 현재의 독일이 됨.
“게르만의 부족에서 시작해, 프로이센의 힘으로 통일하고, 분단을 넘어 통합으로 나아간 나라 — 독일.”
80.프랑스 혁명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 ~ 1799년 (나폴레옹 쿠데타)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 1789~1799)은 '자유, 평등, 박애'를 이념으로 내세워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근대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진 세계사적인 대사건이다.
▶배경 (원인)
*구제도(앙시앵 레짐)의 모순: 성직자(제1신분)와 귀족(제2신분)은 특권과 면세 혜택을 누린 반면, 절대다수인 평민(제3신분)은 무거운 세금과 차별에 시달림.
*재정 위기: 왕실의 사치와 잦은 전쟁(미국 독립 전쟁 지원 등)으로 국가 재정이 파탄남.-귀족, 성직자, 시민계급 삼부회 소집 후 해체되자 바스티유 감옥 습격.
-봉건제 폐지 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인권 선언) 발표 (자유, 평등, 국민 주권 천명),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혁명 종결
81.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1769년~1821년)의 생애
프랑스 혁명기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프랑스 제1제국(프랑스 대제국)의 황제였다.
그는 유럽의 지도를 바꾸고 근대 법체계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상 가장 극적인 인물 중 한 명이다.
1804년 스스로 황제로 즉위해 유럽 대부분을 정복하며 프랑스 제국을 세웠다.
1812년 러시아 원정의 대실패로 몰락의 길을 걸었으며, 유럽 연합군에게 패배하여 1814년 엘바 섬으로 유배되었다.
1815년 잠시 복귀(백일천하)했으나 워털루 전투에서 최종 패배한 후, 외딴 섬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되어 1821년 생을 마감했다.
82.메테르니히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후작(Klemens von Metternich, 1773~1859)
19세기 전반기 유럽의 국제 질서를 정립한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외교관이자 정치가이다.
나폴레옹 몰락 주도: 외교관으로서 프로이센, 영국, 러시아 등과의 동맹을 주도하여 나폴레옹을 몰락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시기에 증기기관이 등장했다. 영국의 제임스 와트의 개량: 1769년 제임스 와트가 뉴커먼의 기관을 개량했다.
1814년 영국 스티븐슨 증기기관차 제작 1821년 영국철도 개통.
83.산업혁명
산업혁명은 약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에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 혁신(증기기관 발명 등)과 대규모 기계 공업의 도입으로,
농업 중심 사회가 산업 및 기계 제조업 중심의 경제 및 사회 구조로 변화한 역사적 사건
84.태평천국 운동(1850~1864)- 반청 운동
태평천국 운동은 19세기 중반 청나라를 뒤흔든 홍수전(洪秀全)이 주도한 대규모 농민 봉기이자 종교 혁명 운동이다.
홍수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 자칭하며 부패한 청나라 타도를 외치고 ‘태평천국’을 세움.
기독교적 이상사회와 평등사회를 목표로 했으나, 내분과 서양 열강의 개입으로 실패.
약 2천만 명 이상이 사망하며, 청나라는 크게 약화되어 서구 열강의 침략에 더 취약해졌습니다.
아편 전쟁 패배로 인한 청 정부의 무능과 재정 악화, 지방 관리들의 수탈, 인구 증가로 인한 농민 생활의 피폐,
그리고 만주족 통치에 대한 한족의 불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85.미국 독립선언-영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
미국 독립선언(Declaration of Independence)은 1776년 7월 4일,
13개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문서이다.
주로 토머스 제퍼슨이 초안 작성, 필라델피아에서 대륙회의가 승인.
86.시민혁명-1848년
1848년부터 1849년까지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일련의 혁명으로, 흔히 '민족의 봄'으로도 불린다.
시민혁명은 봉건제나 절대군주제를 타도하고 법률상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 계급(부르주아지)이 지배하는 사회,
즉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변혁이다
87.열강들의 세계분할 - 1870년대~1914년 (약 40~50년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신흥 산업 강국들이 독점 자본주의의 필요에 따라 식민지 쟁탈전을 벌여 세계 대부분의 영토를 나누어 차지한 역사
제국주의 경쟁 → 제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 원인이 됨
열강나라와 주요 식민지 지역
▶영국-인도, 이집트,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 ‘해가 지지 않는 제국’
▶프랑스-북아프리카(알제리, 튀니지), 서아프리카, 인도차이나(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독일-동아프리카(탄자니아), 남서아프리카(나미비아), 남태평양 섬 등
▶벨기에콩-고(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 — 매우 잔혹한 식민지 경영
▶이탈리아-리비아,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일본-조선, 대만, 남사할린, 만주 등 (20세기 초부터 본격화)
88.제1차 세계대전- 1914년~1918년
제1차 세계대전(World War I)은 1914년~1918년까지 약 4년간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참전한 인류 최초의 총력전.
1)19세기 후반, 열강들이 식민지·자원·시장 쟁탈전 전개→ 영국·프랑스 vs 독일·오스트리아 간의 대립 심화
2)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오스만·러시아 제국 붕괴-독일은 영토·식민지 상실, 막대한 배상금 부과
89. 역사는 무조건적인 추종에서 희생이 따른다.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무자비 함은 한계가 없기에 엄청난 희생이 따른다.
무함마드에 대한 복종, 에수회에 대한 복종, 공산주의에 대한 복종, 히틀러에 대한 복종 등은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이 이어진다.
90.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II)-1939년부터 1945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벌어진 전쟁으로, 전 세계가 참전하고 약 6천만 명 이상이 희생된 인류 최대의 비극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불평등한 조약-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이 과도한 배상금과 영토 상실→ 국민의 불만 폭발, 히틀러의 등장 배경이 됨
1)경제대공황(1929)-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 등장
2)인류 최대의 피해 사망자 약 6천만 명 (민간인 피해가 절반 이상)
3)독일·이탈리아·일본 패전,-- 미국·소련·영국·프랑스 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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