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뻗은 한반도는 이쯤 되는 시기에
남북으로 참 여러 계절이 됩니다.
남녁에는 벚꽃이 만발한데
강원 산녁에는 설화가 내려 앉았습니다.
춘래불사춘이기도하지만
춘삼월 춘사월이 무색한 계절입니다.
"일화독방불시춘 一花獨放不是春
꽃 한 송이 피었다고 봄이 온 것이 아니다."라는
한자성어가 절로 떠오릅니다.
그러나 봄이오면 움트는 새싹만큼이나
우리의 삶도 희망속에
막연하나마 온 갖 기대감이 생겨납니다.
산다는 것은
희망속에 오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삶에대한 법정스님의 시를 모았습니다.
춘삼월을 기다리며
-반기룡-
물안개 내리는
강가에 서성거리면
흐르는 강물이 마구 달려와
지난 사랑의 사연을 졸졸 흘려주고
버들 강아지도 긴 졸음
뾰족 뾰족 털어내며
달려오는듯 한데
봄바람 윙윙거리고
아지랑이 너울거려도
꽃피는 춘삼월에 안부 전한다 하던
새끼 손가락 같은 약속은 보이지 않네
철새들만 오락가락하는 강가에
외로이 서있는 작품 하나
꽃샘바람 무등타고
철새와 함께 긴 방랑이나 해볼까
살아 있는 모든 것
-법정-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우주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움직이고 흐르면서 변화한다.
한 곳에 정지된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해와 달이 그렇고 별자리도 늘 변한다.
우리가 기대고 있는 이 지구도
우주 공간에서
늘 살아 움직이고 있다.
무상하다는 말은 허망하다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우주의 실상이다.
변화의 과정 속에 생명이 깃들고,
변화의 과정을 통해
우주의 신비와 삶의 묘미가 전개된다.
만일 변함이 없이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곧 숨이 멎은 죽음이다.
살아 있는 것은 끝없이 변하면서
거듭거듭 형성되어 간다.
봄이 가고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그와 같이 순환한다.
그것은 살아 있는
우주의 호흡이며 율동이다.
그러므로 지나가는 세월을
아쉬워할 게 아니라,
오는 세월을 잘 쓸 줄 아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자기 자신답게 살라
-법정-
어떤 사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이다.
또 누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잠 못 이룬다면
그는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
가불 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 쪽에 한눈을 팔면
현재의 삶이 소멸해 버린다.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항상 현재일 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다면
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두려움도
발붙일 수 없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
우리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법정-
오늘은 어제의 연속이 아닌 새날이다.
겉으로 보면 같은
달력에 박힌 비슷비슷한 날처럼 보이지만
어제는 이미 가버린 과거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아 있음이다.
어제나 내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자리에 있음이다.
우리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남을 뜻한다.
이 새로운 탄생의 과정이 멎을 때
나태와 노쇠와 질병과 죽음이 찾아온다.
새로운 탄생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먼저
어제까지의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존에 관념에 갇히면 창조력을 잃고
일상적인 생활습관에 타성적으로 떼밀려가게 된다.
우리가 살아온 그 많은 날들이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있어도 그만인 그저 그런 날로 사라지고 만 것도
이 기존의 관념에 갇혀서 맹목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아차릴 때
죽음은 결코 낯설지 않다.
우리는 죽음 없이는 살 수 없다.
오늘이 어제의 연속이 아니라
새날이요 새 아침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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