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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사자성어글

바른 마음 객관적인 생각의 사자성어 여실 지견!



여실지견(如實知見)의 뜻은 무엇일까?


인간의 언행을 가늠해 주고 구분 지어 주는
몇 가지 좌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 종교 사회 문화라든가,
동서남북, 남녀노소, 빈부귀천, 동서고금 등...
이러한 좌표들은 보통의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생각하고
내리는 결론이 다르고 언행이 달라집니다.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처한 여건에 따라
언행을 달리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손을
들어 주기도 합니다.
이때 바른 마음과 객관적인 생각의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는 사자성어가 바로 '여실지견'입니다.
즉, "있는 그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입니다.






여실지견에 관한 사례



아래 내용은 자료를 찾다 보니 '여실지견'이
불교에 매우 근접한 사자성어인 것 같습니다.
종교나 정치적인 여지를 떠나
논리와 진리에 따라 여실지견을 정리합니다.
여실지견에 대해 부처님은 비유를 참 멋지게 한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여기 통에 든 물이 있다 하자.
그 물이 불에 데워져 부글부글 끓고 있다든지,
바람이 쳐서 물결이 일고 있다든지 한다면
그 통 안의 물은 사물의 모습을
여실히 비출 수 있겠느냐?"
여기에서 '물'은 우리의 마음이나 사고를 가리킨다면
당연히 물은 사물의 있는 그대로를
비추 지도 담지도 못할 것입니다.
부처님은 만약 우리의 마음이 탐욕이나 노여움,
자기 견해나 경험의 집착이 우선시 될 경우에는
'여실하게 지견 할 수 없지 않겠느냐'라는
대답을 유도한 고도의 질문인 것입니다.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게 사람의 본능



사람들은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확실한 증거나 정황을 보지 않으면
미리 부정적인 단언을 하거나 믿지를 않습니다.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판단과 편견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 보라"는
여실지견이 중요하다는 것은,
불교의 팔 정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팔 정도는 '정견 정사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입니다.
(1. 정견(正見): 바르게 보기
2. 정사(正思): 바르게 생각하기
3.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기
4. 정업(正業): 바르게 행동하기
5. 정명(正命): 바르게 생활하기
6. 정정진(正精進): 바르게 정진하기
7. 정념(正念): 바르게 깨어 있기
8. 정정(正定): 바르게 삼매(집중) 하기)

팔 정도에서 '여실지견'에 합당한 것이 바로 정견입니다.
 정견은 '있는 그대로 바로 보아야'
"바른 생각 - 바른 언행 - 바른 행동 - 바른 생활
- 바른 노력 - 바른 의식 - 집중"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실지견을 위한 노력 


일반의 보통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자신의 경험을 기준치로 삼으려는 욕심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고집과 편견을 불러오고
나아가서는 아집에 의란 잘못된 판단을 낳습니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정의로움과 투지 대신
현실과 타협하려는 비굴함의 유혹을 받습니다.
따라서 바른 마음과 객관적인 판단을 위한
여실지견의 깨우침을 위해서는,
비굴함과 고집,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여실지견의 교훈


여실지견이 주는 교훈은 단순히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바르게 본다는 것은
진실 되게 행동하고 부끄럽지 않는
인생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소위 말하는 왕년의 내가 듣고 보고 익힌,
얼마 안 되는 경험과 주관과 아집을 버릴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인생을 산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이 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