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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아랍인)과 이스라엘(유대인)간의 전쟁 원인과 역사

 

팔레스타인(아랍인)과 이스라엘(유대인) 간의(유대인) 전쟁 원인과 역사에서 현재 가자지구, 서안지역과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의 진정한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팔레스타인(아랍인)과 이스라엘(유대인)간의 전쟁

 

팔레스타인(아랍인)과 이스라엘(유대인) 간의 전쟁 

 

모세의 이집트 탈출레서 가나안까지 여정

 

무려 이천 년 가까이 가나안 땅을 삶의 터전으로 여기고 살아온 팔레스티나와(135~1948),

이천 년 전 천삼 백 년간 이 땅을 지배해왔던 유대인들에게(BC1200~AD135) 있어서

현재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의 진정한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1948년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영토임을 주장하며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한 이후

국토의 80% 이상을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상태에서,

아랍인 팔레스티나는 90만 명 이상의 난민이 고향을 잃고 현재 유랑민으로 떠돌고 있다.

 

유대인이 가나안 지역에 나라를 건설한 시기는 모세가 유대인을 이끌고 이집트 탈출한 BC 13세기 경이다.

그로부터 BC 13세기~AD135년의 약 1,400 년간 유대인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살다가,

AD 135년 로마제국의 강제 이주계획에 의해 유대인은 가나안 땅에서 추방되어 유럽 각지로 분산되었다.

그 이후 (유대인이 추방된 서기 135년 이후) 가나안 땅 이스라엘은 십자군 전쟁에 의해 잠시 점령당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늘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지배하며 살았다.

19세기 이후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에 대한 거부감이 가중되고 대대적인 '반 유대 운동'이 전개되면서

유대인은 가나안 땅 이스라엘에 그들의 조국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1917년 유대인들은 스위스 바젤에서 자신들의 조국을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살고 있는 이스라엘 지역에

건설한다는 이른바 '바젤 계획'을 채택하였다.

1차 세계대전 (1914~1918)이 발발하자 영국은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방편으로 아랍 민족과 유대인을

전략적으로 이용하였다.

, 가나안 지역에서는 팔레스타인들에게, 미국에 있는 유태인들에게 각각 독립정부를 수립해 주기로 약속하였다.

한 지역에 두 개의 정부 수립을 약속한 영국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가나안지역에 있어서 비극을 예고한 씨앗이 되었다.

2차 대전이(1939~ 1945) 발발하게 되자 또다시 영국은 아랍권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나안지역에 유대인의 이주를 강력하게 규제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유대인들은 준 군사 조직인 이르건(Irgun)

하가나(Haganah)를 결성하여 유대인 국가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반 영국 테러를 전개하였다.

1920년대와 40년대 사이 2차 세계대전에서 벌어진 홀로코스트(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를 피해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지역에 도착하는 유대인이 늘게 됐다.

19471129일 제2차 유엔총회에서 표결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과 유태인의 지구로 분할한다'라는

다수 안을 채택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 구역과 유태인 구역으로 분할시켰다.

유대인들은 이를 기꺼이 수락한 반면 팔레스타인 아랍 측은 거부하였다.

마침내 유대인들은1948514일 텔아비브에서 다비드 벤구리온을 수상으로 하는 이스라엘 국가를 수립하였다.

이후 이스라엘은 무려 1948년부터 1973년까지 있었던 네 차례에 걸친 아랍국과의 전쟁에서 모두 일방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요르단 강 서안 등 무려 본토의 5배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을 점령하였고,

팔레스티나인 아랍인 90만 명 이상이 난민으로 떠돌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과 이스라엘 유대인의 전쟁의 역사

 

원인

팔레스타인 분쟁은 유대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서의 기원전부터의2천 년 기록을 근거로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1948514일 이스라엘 국가를 건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서기 135년경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들이 로마에 의해 추방된 후 팔레스티나 아랍인들에

통치되어 왔다

 

시발점

BC 1200~1400,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와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이집트로부터 탈출하여 약속의 땅인

가나안(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간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 들어간 비슷한 시기에 남부 해안 지역으로 해양 민족인 필리스틴 사람들이 이주하고

양 민족 간에 영토 분쟁이 시작된다.

필리스틴은 영어로 Philistine이고 이 사람들이 현 팔레스타인(Palestine)이다.

따라서, 바로 이 시점이 팔레스타인 분쟁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다.

 

​▣ 전쟁의 과정

1. BC 1020년경, 이스라엘 민족은 필리스틴을 비롯한 가나안 원주민들을 제압하고

다윗 왕 영도 하에 통일왕국을 이룸.

 

2. 그러나 BC 63년경 로마에 점령당하고 서기 135년경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추방당하고

아랍인들이 통치하였다.

 

3. 아랍인들은 사라센 제국의 건설 이후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장악하였으며,

예루살렘을 성도로 삼아왔다.

 

4. 19세기(1800년경) 후반 유럽에서 반유대인 운동이 전개되고 그에 대응하여 유대인들이

'조국의 건설'을 목표로 민족주의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면서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5. 유대인들은 18978월 스위스의 바젤에서 개최된 제1차 시온주의자 회의에서

자신들의 조국을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한다는 이른바 '바젤 계획'을 채택하였다.

 

6. 1차 세계대전 (1914~1918)이 발발하자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미끼로

이율배반적 약속을 하면서 아랍 민족과 유대인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책을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7. 영국은 먼저 아랍인들이 참전하면 전쟁 종결 후 그 대가로 후세인이 요구하는 아랍지역의

독립(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 국가 건설 포함)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었다.

 

8. 영국은 유태인들에게도 똑같은 내용의 약속을 하면서 그들의 전쟁 지원을 유도하였다.

영국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유태인들을 이용하여 미국의 대 독일 전쟁 참여를 유도하고

유태인 재벌들의 재정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유태인들의 민족 향토를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발포어 선언문).

 

9. 그러나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이와 같은 약속을 모두 저버리고 19204월 상 레모(San Remo)

회의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라크 및 요르단과 함께 자신의 위임통치 하에 편입시켰다.

영국은 그 후 이 지역을 통치하면서 오히려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오는 유태인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취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태인들은 유럽으로부터 이 지역으로 대거 이주해 오기 시작하였으며,

19세기 말 러시아와 폴란드에서의 반유태인 운동, 1933년 이후 나치 독일의 유태인 박해 등이 유태인의 이주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유태인들의 이주가 증가됨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태인 토지 소유가 늘어났으며,

이것이 아랍인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반유태인 운동을 촉발시켰다.

아랍인들의 반발은 반유태인 운동을 넘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조직화로 나타났다.

 

10.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아랍 민족의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 유태인 이주를 강력하게 억제하였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이미 준 군사적 단체인 이르건(Irgun)과 하가나(Haganah)를 조직하여

반영국 테러를 전개하면서 국가의 창설을 추구하였다.

 

11.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는 19471129일 제2차 유엔총회에서 표결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과 유태인의 지구로 분할한다'라는 다수 안을 채택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 구역과 유태인 구역으로 분할시켰다. 유태인들은 이를 기꺼이 수락한 반면

아랍 측은 거부하였다.

마침내 유태인들은 1948514일 텔아비브에서 다비드 벤구리온을 수상으로 하는 이스라엘 국가를 수립하였다.

 

12. 이후 네 차례의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이른바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불리는 제1차 전쟁은

이스라엘 건국 직후 이집트를 비롯한 7개 아랍 국가들이 무력적 항쟁을 벌이면서 발생되었다.

 

13.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80%를 차지하는 전과를 성취하였고, 팔레스타인인들은

90만 명이 유랑민으로 전락하게 됨으로써 훗날 중동지역의 최대 골칫거리를 유산으로 남기게 되었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지역 주민 수십만 명이 피난길에 나서야 했고 이 사건은 아랍어로

'알 나크바(Al Nakba)' 혹은 '대재앙'으로 불린다.

 

14. 195610월 이른바 '수에즈 전쟁'으로 불리는 제2차 중동전쟁이 발생하였다.

이는 이집트의 낫세르가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함으로써 발생되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을 통해 시나이반도의 요충지를 점령하는 전과를 올렸다.

 

15.196765일에는 시리아, 이집트 연합세력과 이스라엘 간에 이른바 '6일 전쟁'으로 불리는

3차 중동전쟁이 발생하였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시나이반도, 골란 고원, 가자 지구, 요르단강 서안 등 본토의 5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을 점령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16. 197310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기습적으로 공격함으로써

이른바 '라마단 전쟁' 또는 ''욤 키푸르 전쟁'으로 불리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다.

 

17. 197311월 알제리에서 개최된 아랍 정상회담에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PLO)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대표로 승인되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단순한 테러집단이 아닌 정치적 실체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18.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핵심 쟁점에 대한 타결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핵심 쟁점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양도하는 영토의 범위와 시기,

이를 바탕으로 한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선포 시기 및 예루살렘 문제 등이다.

 

19. 추후 전망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국가 간에는

상호 실체 인정과 공존을 사실상 원치 않는 데 있다.

이는 3000년 이상 지속된 양측의 뿌리 깊은 역사적 반목과 종교적 이유에 기인하고 있다.

따라서, 동 분쟁은 항상 아랍 대 이스라엘의 국제적 분쟁이 될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시리아, 이란, 이라크 등은 이스라엘에 대해 특히 반감을 갖고 있는 국가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스라엘과 전쟁도 불사할 가능성이 크다.

한 예로 1999년 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팔레스타인 전 지역의 해방을 주장하면서 투쟁을 천명한 바 있다.

 

20.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내부 문제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성서에 나오는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인 요르단강 서안의 이양을 반대하는 이스라엘의 유대교 원리주의자와

이스라엘 정부에 퍼져 있는 강경 주의자들도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원치 않고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과 협상을 원하는 세력, 독립국가의 즉각적인 선포를 주장하는 세력,

이스라엘과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하마스 등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

결국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문제 해결을 위한 통일된 국론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양측이 합의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일방에 의해 무효화될 수 있어서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 매우 힘든 상황이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21.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 협상 핵심 쟁점 및 문제점

 

팔레스타인 난민 처리 문제:

팔레스타인 난민은 요르단에 140,

가자 지구에 80, 요단강 서안에 57,

레바논과 시리아에 37만 명 등 총 370만 명.

팔레스타인은 이들이 이스라엘이 건국한 1948년 당시에 팔레스타인 지방에 거주한 75만 명의 자손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재산권을 행사하기를 요구하는 반면,

이스라엘은 이들이 돌아올 경우, 이스라엘인이 거주 영토에서 소수로 전락할 수 있음으로 반대함

 

​예루살렘 문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예루살렘 전체를 자국의 수도라고 주장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동예루살렘은 자국의 미래 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주장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 50년간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한 결과

현재 유대인 60만 명이 동예루살렘에 살고 있다.

팔레스타인 측에선 유대인의 동예루살렘 정착은 국제법상 불법이며 평화의 장애물이라고 말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동예루살렘과 가자 지구, 서안지구 문제:

동예루살렘과 가자 지구, 서안지구에서는 여러 차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민 간 긴장이 고조됐었다.

가자 지구는 하마스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장악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스라엘과 여러 번 대치해왔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하마스에 무기가 반입되는 걸 막기 위해 가자 지구의 국경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20214월 중순 라마단이 시작된 이후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시민이 야간에 충돌하는 일이 잦아지며

사태가 고조되고 있다.

 

22. 양측 갈등의 핵심 사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서로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 처리 문제에서부터,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의 잔류 문제,

그리고 양측이 예루살렘을 공유해야 하는지 아닌지가 해결돼야 한다.

또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만들어져야 하느냐는 가장 답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양측은 25년 넘게 평화 회담은 해왔지만, 지금까지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향후 어떤 평화협정이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할 것이다.

 

23. 가자 지구

북동쪽의 웨스트뱅크(West Bank)와 함께 잠재적 팔레스타인의 영토로 상정된 곳으로 팔레스타인 남서부,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19945월부터 팔레스타인들의 자치가 시작됐다.

팔레스타인 남서부,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지중해 해안을 따라 길이 약 50km, 5~8km에 걸쳐

가늘고 길게 뻗은 총면적 약 362km의 2362km2에 이르는 지역이다.

인구 대부분이 팔레스타인인으로 오랫동안 대 이스라엘 저항세력의 중요한 거점이 돼 왔고,

팔레스타인과 유대인 정착민이 서로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