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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조선 5대 궁궐과 창덕궁 낙선재의 애환

서울의 조선 5대 궁궐


조선의 궁궐은 크게 정궁과 별궁과 행궁으로 나누어집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1392년) 하고 나서  
수도를 지금의 서울인 한양으로 옮긴 뒤에,  
제일 먼저 종묘와 사직을 바로 세우고,  
그리고 궁궐인 경복궁을 지었습니다(1394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서울의 조선 5대 궁궐은, 
정궁인 경복궁과 별궁으로 지었으나  
실제로는 정궁 역할을 한 창덕궁,  
그 동쪽에 배치한 창경궁이 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임시 궁궐이었으나  
광해군 때 정식 궁궐이 된 덕수궁(경운궁)과,  
광해군 때 별궁으로 서궁이라 불린 경희궁이  
바로 5대 궁궐입니다. 





경복궁-근정전(勤政殿) 



‘경복’이란 ‘큰 복을 누리다’라는 뜻으로,  
정도전이 지은 것입니다.  
조선 개국 3년 뒤인 1395년에 태조 이성계가 건립했으니,  
조선의 역사를 함께한 궁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1592) 때 모조리 불에 타버려 복구되지 못하다가  
결국 270년이 지나 흥선대원군이 중건 작업을 한 후에야  
경복궁은 다시 법궁으로서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보는 경복궁은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훼손된 것입니다.  
하지만 명실상부한 조선의 법궁이자 대표적인 궁궐로서,  
또 조선의 역사를 함께한 궁궐로서  
경복궁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창덕궁-인정전(仁政殿) 



창덕궁은 비록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유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장 조선적인 궁궐이라는 말을 듣는 궁입니다.  
다른 궁궐들에 비해 가장 많은 부분이 보전되어 있고,
또 건축 특성상으로도 한국적 정서와 사상이 
깊이 스며든 궁궐이기도 합니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태종 즉위 후 지어진 창덕궁은,  
이 궁(별궁으로 지어졌습니다.  



창경궁-명정전(明政殿) 


가장 비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는 궁궐로 
창경궁은 성종 때에 지어진 궁입니다.  
기존에 있던 창덕궁 담장 옆으로 확장하여 지어진 궁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창경궁의 건물들을 헐어버린 후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세우고, 
이름도 창경원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1980년대에 창경궁 복원 사업을 맞이하여  
원래의 모습을 일부분이나마 되찾고,  
그 이름 또한 창경궁으로 바뀝니다. 



덕수궁-중화전(中和殿) 


돌담길이 유명한 덕수궁의 본래 이름은 경운궁입니다.  
사실 경운궁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기간이 훨씬 더 긴 궁궐입니다. 
경운궁은  성종의 형님이었던 월산대군의 개인 자택이었습니다.  
이러한 개인의 거처가 임진왜란 시 선조가 피난길에 거처하면서  
궁궐로 개조한 건물입니다.  
조선 5대 궁궐의 정전들 중 유일하게  
가운데에 ‘정(政)’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바로 덕수궁의 중화전입니다.  
고종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궁궐의 이름을 '경운궁'에서‘덕수궁’으로 바꾼 것이  
현재의 명칭이 되었습니다.


경희궁-숭정전(崇政殿) 


광해군 때에 지어진 궁궐로, 처음 명칭은 경덕궁이었습니다.  
경복궁이 불타 없을 때에 법궁이었던 동궐과 함께,  
이궁(별궁)으로서 기능했던 궁궐입니다.  
경희궁이라는 명칭은 인조 때에 붙여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경희궁은 일제 강점기 때 심하게 훼손되어  
현재에는 남은 건물이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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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창덕궁은 태종 5년(1405년)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조선의 궁궐이다. 
창덕궁은 500여 년 조선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임금이 거처한 궁궐이었다.  


창덕궁 개요


창덕궁(昌德宮)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있는  
조선 시대 궁궐로 동쪽으로 창경궁과 맞닿아 있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서 조선 시대에는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東闕)이라 불렀다. 
창덕궁 후원은 한국의 유일한 궁궐 후원이라는 점과  
한국의 정원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1997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보다 오히려 더 많이 쓰인 궁궐이다. 
창덕궁은 정문인 돈화문과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등 각 건물이 일정한 체계 없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어 평지에 세운 
경복궁과 대비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다시 지어졌고,  
1868년 경복궁이 다시 지어질 때까지  
경복궁의 역할을 대체하여 임금이 거처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정궁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부분이 의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그린 《동궐도》와  
1900년에 그려진 《동궐도형》을 참조하여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낙선재 


낙선재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왕의 연침공간 조성을 목적으로 낙선재가 지어지고  
이듬해에 빈의 처소를 위하여 석복헌을 짓고  
수강재를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낙선재의 애환


낙선재(樂善齋)는 헌종 13년(1847년)에 지어진 건물로, 
본래 이름은 낙선당이었으며, 창경궁에 속해 있었다.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이었던 경빈 김 씨를 위해 지은 것으로  
헌종은 낙선재에서 경빈 김 씨는 석복헌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낙선재의 의미는 선한 일을 즐겨 한다는 의미이고  
석복헌은 복을 준다는 뜻으로 후사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단층 건물이다.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여기서 기거하다 숨졌으며,  
1963년 고국으로 돌아온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는  
각각 1970년과 1989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덕혜옹주 역시 어려운 삶을 보내다  
1962년 낙선재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으며,  
1989년 사망한 비운의 거처이기도 합니다. 


‘복녕당 아기씨’ ‘이덕혜’(李德惠)의 일생 아래 참조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 전범 일본

http://bbanzz.com/220872228238